부상으로 야구를 포기한 뒤 밤거리를 달리는 치킨 배달부 진원. 망가진 투수 팔이 기형적인 ‘치킨 팔’로 변해버린 판타지적 설정은 꿈을 잃고 도망치는 청춘의 상실감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대변한다. 그저 숨죽여 하루하루를 버티던 그는 배달지에서 곧 결혼을 앞둔 전 여자친구 미영과 마주치고, 감추고 싶었던 비루한 현실과 직면하게 된다. 늘 도망칠 뿐인 겁쟁이가 마침내 도망치기를 멈추고 다시 와인드업을 시작하는 이야기.
은 기적적인 재기 스토리가 아닌 오랫동안 외면했던 미련과의 처절하고도 홀가분한 결별 의식이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야구계의 이 널리 알려진 명언은 에서 지독하게 역설적이면서도 뭉클한 방식으로 새롭게 쓰인다. 엔딩을 장식하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 ‘치킨런’은 영화의 짠한 정서를 극대화한다. "내 인생의 영토는 여기까지야"라는 서글프고 단호한 가사는, 역설적이게도 뼈아픈 실패를 온전히 인정해야만 다음 베이스를 향해 뛸 수 있다는 묵직한 위로로 다가온다. 꿈의 마운드에서 내려와 삶이라는 거대한 그라운드를 향해 달려 나갈 세상의 모든 겁쟁이들을 위한 다정한 찬가다.
-조계영 (제28회 정동진독립영화제 선정위원)
자료 출처 : 정동진독립영화제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