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변두리, 공릉동 집. 그곳에는 서로 다른 시간과 언어를 품은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간다. 한국인 최진배와 미얀마인 녜인따진. 어느 날, 고요한 일상을 가르는 한 장의 사진이 도착한다. 쿠데타 이후, 무너져 내린 미얀마 마을. 그 이미지는 마음의 고향에서 건너온 절박한 외침이었다. 최진배는 그 부름을 외면하지 않는다. 기록은 무엇인가. 연대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어떤 시선으로 서 있는가. (<시네마 속 5월>과 묶음 상영합니다.)
작품의 출발점은 부부가 간직한 푸티지로부터 시작했다. 나는 미얀마 군부의 폭력과 민중의 저항이 담긴 푸티지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미얀마 실상을 알리는 소셜 미디어들이 늘어나면서 푸티지 중심의 이야기 전개는 다른 작품과 차별성을 가지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작품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푸티지를 버리고, 부부가 느끼는 불안한 심리적 감정선에 주목하며, 한국의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미얀마에서 일어나는 야만적인 사건을 어떻게 담아내야 할지를 고민하여 작품을 만들었다.
한국인 최진배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프로그램을 통해 방문한 미얀마에서 현지 여성 녜인을 만나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미얀마에서 신혼살림을 계획하고 있던 커플은 그러나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로 그만 한국에 발이 묶여버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1년 2월 1일, 미얀마에서는 군부 쿠데타 소식이 들려온다. 민주화를 외치는 수많은 미얀마 시민들이 이에 반대하며 군부와 맞서기 시작하고 녜인과 진배 커플은 한국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따로 또 같이 그들과 연대하고자 분투하고 고민한다. 2026년 현재까지도, 미얀마의 내전은 여전히 현재진행 중에 있다. 〈지금, 녜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미얀마와 한국 사이에 가로놓인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이다. 동시에 벌어지고 있지만 온전히 체감할 수는 없는 저곳 미얀마의 현실은 언론 보도, 그리고 현지 지인과의 제한적인 SNS 소통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지는데, 그것이 이곳 한국의 미얀마인 녜인에게 독특한 신체감각을 발생시킨다. 그것을 ‘두 겹의 삶’(dual life)이라 불러 보면 어떨까. “두 겹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작년 디아스포라영화제 관객과의 대화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석한 어느 재한 팔레스타인 유학생의 입에서 흘러나온 저 문장을 나는 지금도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다. 흡사 전기에 감전된 듯한 기분이었다. 과연, 가자 전쟁의 와중에 가자 바깥에 체류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의 심정이란 저런 것이겠구나 싶었다. 가자의 자리에 미얀마를 포개어 본다. 녜인의 심정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과 미얀마, 두 겹의 삶. (이종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