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가리다.” 한 여성의 목소리가 개울가에서 왜가리와 마주했던 기이한 순간을 떠올린다. 그것은 꿈이었을까, 환각이었을까, 과로로 인한 착각이었을까. 영화는 개울의 흐름을 따라가며 좀처럼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에 귀 기울인다. 취리히 외곽의 급격한 도시 확장으로 오래된 습지가 덮이며 태곳적부터 그곳에 살아 온 존재들은 터전을 잃고, 변화하는 풍경 아래 너무나 미세해 식별하기 어려운 흔적들마저 지워져 간다. (<아라온 로그>와 묶음 상영합니다.)
<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물의 목소리와 물이 지닌 고유한 언어를 듣기 위한 매체로 영화를 택한다. 시점을 바꾸면 물은 여러 생태계가 모여드는 하나의 장소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인간을 중심에서 밀어내자고 권하며, 위태로운 다종의 세계와 공생을 드러내는 감각의 전환을 제안한다. 그 전환은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인간이 오랜 세월 자연을 식민화하며 물을 오염시켜 온 일을, 동식물에게 제멋대로의 생명 분류와 무관심과 폭력을 강요해 온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