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을지로 사이의 인쇄 골목에서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충무로와 을지로가 영화와 출판이라는 기록의 매체에 대해 갖는 상징성이 무색하게, 오래된 인쇄소와 현상소가 도시 바깥으로 밀려난 자리엔 오피스텔과 상가가 자리할 예정이다. 재개발로 살던 곳에서 밀려난 20대 청년 희탁은 철거가 예정된 현상소 주인이자 70대 노인인 민수의 집에 머물게 된다. 한 번 자리를 잃고 밀려난 주인공은 머지않아 밀려날 곳에 기거한다. 필름 카메라로 사라질 가게와 골목들을 찍는 희탁과 그것들을 인화해 주는 민수, 풍경이 찍힌 필름은 도시를 기록한 물건이 되지만 이들의 관계를 담아내진 못한다. 골목 사이사이 스며들어 있을 기억과 관계들은 그것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발견될 것이다. 똑같은 충무로의 골목 풍경 사진을 본다 해도 말이다.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기억과 관계가 중첩된 순간을 필름에 담아내는 것, <슈뢰딩거의 달팽이>는 어딘가 눅눅한 느낌마저 드는 충무로 상가 아랫길의 분위기를 담아내며 희탁이 셔터를 누르는 순간을 향해 간다.
- 제27회 대구단편영화제 예심위원 박동수
자료 출처 : 대구단편영화제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