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수많은 디아스포라 이주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하지만 그 풍경을 현실감 있게 담아낸 영화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디아스포라 배우들이 직접 출연해 당사자의 정체성을 연기하는 장면을 보는 일은 더없이 반가운 경험이다. 〈창신동 마트〉는 바로 그러한 갈증을 해소해 주는 작품 중 하나이다. 베트남 이주민 린에게 창신동의 베트남 식료품점은 일터이자 정체성이 깃든 고향 같은 공간이다. 린은 이곳에서 베트남 이주민 친구들과 모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함께 매니큐어를 바르며 소소한 일상을 이어간다. 그곳에 옥순이 들어오면서 린의 일상은 흔들린다. 옥순은 한국 고객들을 위해 망고 젤리 자리를 제멋대로 옮기고, 베트남 특유의 강한 향신료를 거부하며 된장을 찾는다. 심지어 린의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린의 영역 깊숙이 파고든다. 결국 옥순이 열쇠고리를 나눠주는 일이 도화선이 되어 린은 폭발하고 만다. 그 순간 린은 한국어 대신 베트남어로 감정을 쏟아낸다. 옥순이 알아듣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이곳은 내 영역이니 침범하지 말라는, 말보다 더 선명한 엄포이다. 작은 배달 사고를 함께 해결하고, 홀로 사는 옥순의 집을 방문하면서 린은 옥순에게 마음의 문을 천천히 열게 된다. 옥순의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야경은 화려하고 매혹적이지만 어딘가 헛헛함을 준다. 수많은 불빛들이 저마다 외따로 빛나고 있기 때문일까. 린은 그 풍경 속에서 화려한 도시 한가운데 홀로 살아가는 옥순의 처지와 자신의 처지를 겹쳐보았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언어도, 나이도 다른 두 사람이 같은 도시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홀로 살아가는 모습을 덤덤히 보듬는다. (박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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