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의 변
이상한 데 꽂혔음을 시인해야겠다. ‘럭키’하지 않은 하루를 보내는 〈아이 위시 럭키〉의 주인공 해외 입양인 사라가 처음 한국에서 마주하는 사람은 미약하게 자신의 모계와 연결된 혈족이다. 사라는 아주 어렸을 적에 영어권 국가로 입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한국어를 하지 못한다. 한국을 기준으로 해외에 거주 중인 사라가 그곳에서 들고 온 캐리어와, 한국에서 갑자기 맡게 된 ‘짐’이 교차하는 그 시점에서 사라의 혈족이 타고 온 자동차의 전면부가 보인다. 시종일관 초점이 어긋나 있다가 상이 선명하게 화면에 잡히는 순간, 자동차 전면부에 얼기설기 붙은 스티커와 함께 그 위에 쓰인 글자가 드러난다. ‘놀부네 양파 농장’
사라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 해외 입양 한국인이 한국에 어떤 연유로 돌아와, 한국 거주민과 언어로 소통하지 못하는 풍경 자체는 일련의 입양인 소재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보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 위시 럭키〉는 ‘놀부’라는 한국인만 이해할 수 있을 전래동화 속 기운을 끌어옴으로써, 사라와 한국 사이에 발생하는 ‘단절’을 약간 시니컬한 유머처럼 형상화한다. 언어가 통한다는 건 언어가 놓인 맥락, 같은 지역을 공유하는 인간들끼리 서로 이해하는 상징체계들까지 교환될 때 가능하다. 사라와 혈족은 단순히 ‘말이 안 통하는’ 정도를 넘어서 온전히 단절되어 있다. 이 ‘단절’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간단한 장치인 ‘놀부네 양파 농장’은 영화를 보는 ‘한국인’인 나에게 효과적으로 다가온다.
사라는 끝에 다다라 만국의 공통 상징체계인 ‘이미지’를 통해 어떤 연결점에 도달한다. 단절을 보여주는 상징은 한국적인 것(놀부)으로, 연결을 보여주는 상징은 탈언어적인 이미지로 보여주는 전략은 단순하지만 꽤 선득하다. 숨기는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이 여백으로 남아 있는(사라는 왜 입양인이 되었을까 등의) 〈아이 위시 럭키〉가 명료한 영화인 것 같은 감상으로 남는 건, 단절과 연결이라는 입양인 영화의 오랜 주제를 단순하지만 제법 효과적인 장치로 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박지한)
자료 출처 : 디아스포라영화제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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