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흐르는 여정’. ‘흐르다’와 ‘여정’. ‘흐르다’는 동사(動詞)이고, ‘여정’은 명사(名詞)이다. 품사는 다르지만, ‘흐르다’와 ‘여정’은 모두 ‘움직인다’는 뜻을 내포한다. 이렇게 보면 제목이 굉장히 역동적이다. 그 값을 하듯, 영화의 전개와 흐름, 인물의 등/퇴장은 템포가 빠르다. 〈흐르는 여정〉이 독립영화의 자장 안에 있으며, ‘입양’과 ‘유사 가족’이라는 고전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 데 비해 영화의 리듬감은 형식과 주제에서 보이는 선입견보다 빠르다. 이 부분에서 〈흐르는 여정〉은 독특한 형태로 완성되었다.
80년대 후반—90년대 초 한국 영화의 뉴웨이브 시기, 한국 현대사의 조망되지 않았던 지점을 묻고 추적하는 일련의 ‘해외 입양된 한국인’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나왔다. 이를테면 장길수의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박광수의 〈베를린 리포트〉. 이 작품들은 해외 입양인들이 타지에서 겪는 어떤 ‘고통’의 형상과 비극적 상황에 집중하였다. 아마도, 동시대의 첨예한 지식인들이기도 했을 한국 영화의 뉴웨이브 세대들이 한국의 비공식 ‘수출품’이었던 해외 입양인들에 가지는 어떤 죄책감이 투영된 결과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로부터 30여 년이 흘러, 이제 새로운 세대의 감독들은 국외에 입양된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겪는 어떤 고통에 집착하기보다 자신의 존재를 물으러 한국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혹은, 아예 ‘해외 입양’되었던 그 서사 자체를 어떤 설정의 형태로만 남긴 채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이전 세대들이 해외 입양인에게 가졌던 어떤 ‘죄책감’의 감정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미 ‘온전한’ 존재로서의 입양인들을 보여주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증명하는 방식으로서 더 성숙한 묘사의 전략을 택한다. 〈흐르는 여정〉 역시 영화 속의 등장인물을 통해 새로운 세대의 해외 입양인 묘사의 방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흥미롭고 역동적인 템포 속에 성숙한 묘사가 엇갈려 엮인 〈흐르는 여정〉은 새로운 세대의 ‘입양인 서사’를 언급할 때 항상 중요하게 다뤄질 작품이다. 2025년 부산국제영화제 KBS 독립영화상, 한국영화감독조합 플러스엠상 수상. 2025년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시선상 수상작. (박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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