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의 변
정말이지 아주 드물게 이런 영화를 만날 때가 있다. 마치 이전에는 영화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영화의 모든 것을 다시 발견해 가는 기쁨 속에 있는 영화를. 영화의 주연과 연출을 맡은 신채린 자신을 포함해 불과 다섯 명의 스태프로 완성한 초저예산 장편영화 〈피크 엔드〉가 바로 그런 영화다. 하지만, 그가 영화의 역사에 대한 전적인 무지 속에서 작업했다는 뜻은 아니다. 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작은 도둑질의 범죄적 흥분을 아는 이라면 〈피크 엔드〉의 린과 소라가 일회용 사진기를 훔치는 장면을 각별하게 느낄 것이다. 신채린은 사진을 훔쳐 영화를 다시 발견하고 이에 힘입어 영화사의 모든 것을 자유롭게 훔친다. 그리하여, 픽션이기도 하고, 다큐이기도 하고, 일기이기도 하고, 여행기이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놀이이기도 하고, 동료들과의 작업이기도 하고, 메이킹 필름이기도 하고, 워크숍 작품이기도 하고, 완성된 작품이기도 하고, 영영 완성될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한 〈피크 엔드〉는, 이런저런 장르와 양식과 스타일로 분류되고 명명되기 이전, 미분화(未分化)된 영화의 유토피아를 화면에 불러온다. 교토의 예술학교에 다니는 한국인 유학생이 오키나와 출신의 친구와 합심하여 영화를 발견하고 풍경을 발견하고 사람을 발견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디아스포라적 (비)정체성의 명랑한 실천과도 같다. (유운성)
자료 출처 : 디아스포라영화제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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