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의 변
한국에서 10년 가까이 일했다. 고생할 만큼 했고 돈도 벌 만큼 벌었다. 셀림은 이제 방글라데시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의 발걸음을 붙잡는 것은 가족이다. “너 뭐 해 먹고 살 거야. 돌아오지 마.” 귀향은 더 이상 개인의 결심만으로 완성되는 선택이 아니다. 가족의 생계와 기대, 송금의 압박, 타국에서 버텨온 시간이 셀림의 주변에 겹겹이 얽혀 있다. 친구 라흐만 역시 귀향에 부정적이다. 겉으론 프렌드네 패밀리네 하며 다가오지만 속으로는 이용할 궁리뿐인 한국 사회의 위선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는 애인 남과 좀 더 안전한 곳에서 살아가기를 바란다. 〈빨대〉는 이처럼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고,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이주자의 역설에서 출발한다.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나 1998년 한국에 온 섹 알 마문 감독은, 이주노동을 경험한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민의 현실을 꾸준히 영화 속에 그려왔다. 비영리 이주민 문화예술단체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를 운영하고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에 참여하며, 작품 안팎에서 당사자의 목소리에 지속적으로 힘을 싣기도 했다. 〈파키〉, 〈굿바이〉, 〈세컨드 홈〉, 〈빠마〉, 〈노 웨이 아웃〉, 〈미호의 여정〉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작업은 단지 이주민의 고통을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이주민이 개성과 욕구를 지닌 한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여러모로 관찰한 결과다.
〈빨대〉는 그간 축적된 문제의식을 장편 서사 안에서 한층 넓고 복합적으로 풀어낸다. 차별과 폭력, 미등록 체류의 위험, 불안정한 노동환경을 드러내는 동시에, 영화는 이주민을 저마다 다른 욕망과 감정, 상처와 유머를 지닌 인물로 묘사한다. 나아가 최대한 다양한 얼굴을 껴안겠다는 자세로 이주와 계급, 장애, 성적 지향이 교차하는 자리를 부단히 살핀다. 그러한 노력 덕분에 영화 속 디아스포라는 단순한 국경 이동의 경험을 넘어 조국과 회사, 가족이라는 경직된 공동체 바깥에서 새로운 관계를 발명하고 유지하는 과정으로 확장된다. 꿈을 빨아들이는 자본의 논리와 “잠조차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현실 속에서도, 그렇게 영화는 끝내 우정과 돌봄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는다. (차한비)
자료 출처 : 디아스포라영화제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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