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의 변
베이루트 지도 위에 미니어처 세트가 펼쳐지고 작은 피규어들이 자리를 잡는다. 마치 어린아이가 인형놀이를 하듯, 주인공 피다와 인터뷰이들은 그 작은 세계 안에서 1980년대의 베이루트를 되짚고 재구성하고 대면한다. 실제 기록 영상 못지않게 이 행위는 우리를 사건 안으로 깊숙이 끌어당긴다. 과거를 상기하며 씁쓸해하기도, 때로는 자신을 항변하기도 하는 인터뷰이들의 표정을 우리는 영화 내내 바라보게 된다.
‘그린 라인’은 레바논 내전 당시 베이루트를 동서로 가로지르던 경계선이다. 서쪽의 무슬림 구역과 동쪽의 크리스천 구역을 나누었던 이 선은, 무력 충돌로 인해 사람의 발길이 끊기면서 나무와 풀에 점령당했고, 그렇게 ‘녹색 선’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남북한 사이 비무장지대의 울창한 숲이 떠오르는 풍경이다. 불과 300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두고 여러 세력이 격돌했던 당시의 상황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때 중동의 정치적 갈등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중동 정세를 둘러싼 거대한 담론이 아니다. 벽 뒤에 숨은 군인은 총알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상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방아쇠를 당긴다. 명분은 총구의 방향을 정해주지 않는다. 적군과 민간인은 뒤섞이고, 그 희생은 ‘부수적 피해’라는 말로 간단히 처리된다. 전쟁의 본질은 바로 거기에 있다. 명분 아래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영화는 그 전쟁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려 한다. 피다는 이제 성인이 되었지만, 당시 아이였던 자신의 눈으로 그 시절을 기억하고자 한다. 어린 시절엔 1미터가 1킬로미터처럼, 1초가 1분처럼 느껴진다. 그 스케일 안에서 경험한 하나하나의 사건은 아이의 삶에 지대한 흔적을 남긴다. 피다에게는 총구를 겨누던 한 소년병과 마주쳤던 순간이 그런 기억이다. 논의가 거시적이고 개념적으로 흘러갈 때마다, 피다는 그것을 한 아이의 관점으로 끌어내린다. 미니어처 세트는 그 작업을 위한 도구다.
피다는 당시 전쟁에 가담했던 당사자들을 찾아가 불편한 질문들을 던진다. 다소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질문들이지만, 피다는 용감하게 묻는다. 그녀의 시선은 이상주의적이다. 하지만 전쟁을 겪은 자들은 반문한다. 과연 너도 그 상황에서 다를 수 있었겠느냐고. 생존본능은 어떤 명분보다 강하다. 전쟁 앞에서 개인은 무력하다. 신은 인간에게 잊는 능력을 주셨다.
모두가 범죄자이지만, 모두를 탓할 수만도 없다. 전쟁에선 사람의 얼굴도, 이름도 지워진다. 미니어처와 피규어를 통해 개인에게 이름을 되돌려주려 했던 피다의 시도는 그렇게 벽에 부딪힌다. 피다는 이 학살의 기억을 씻어내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는 역설적으로, 다양한 인터뷰이들의 증언을 통해 그 기억을 더욱 선명하게 새긴다. (박준호)
자료 출처 : 디아스포라영화제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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